2019년에 호주로 다녀온 가족여행은 결혼 10주년 기념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10년 전에는 없었던 두 사람이 이 여행에 동행했기 때문이죠. 아이들과 쌓았던 수많은 추억들 중 지금도 첫째가 이야기하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바로 양털 깎기 쇼에서의 경험이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아이에겐 더 인상 깊었던 모양입니다.
시드니의 커다란 동물원을 구경하러 갔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가이드분이 곧 양털깎기 쇼가 있을 예정이니 쇼 하는 장소에 가서 자리를 잡으라고 하더군요. 어그부츠로 유명한 브랜드 'UGG'에서 하는 쇼였습니다. 어그부츠가 질 좋은 호주산 양털과 가죽으로 만드는 호주 브랜드인지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사람들은 호주에서만 볼 수 있는 구경을 하러 많이 몰려들었습니다. 우리 네 가족은 가운데 즈음에 자리를 잡고 앉아 쇼가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쇼의 주인공인듯 한 호주 어르신 한 분이 관중들 사이를 걸어다니며 두리번 두리번 거리더니 저희 첫째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더니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Can you come up if I call you on stage?
아이는 눈이 동그랗게 되어서 저를 쳐다봤습니다. 무슨 말이지?하는 표정이었죠. 저는 그 어르신께 "Yes, he can. He will go up."이라고 말한 뒤, 아이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따가 저 분이 너한테 무대로 올라오라고 부르면 갈 수 있겠어?"라고 물으니 아이는 "그러지 뭐"라고 흔쾌히 대답했습니다. 아이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 귀엽기도 하면서 한편 걱정도 되었습니다. 올라가서 당황하고 울기라도 하면 어쩌지? 싶더라고요. 하지만 제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조금 후에 아이는 어른 둘과 함께 무대에 불려 올라갔습니다. 양털 깎는 어르신은 가장 먼저 아이를 보며 물었습니다. "Hi, where are you from?" 영어 일자무식인 아이는 초롱초롱 어르신을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그 분은 또 다시, "From china?"라고 묻더군요. 어딜 가나 중국인 관광객이 많을 때였으니까요. 아이는 그제서야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No, Korea"라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그날 아이의 영어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습니다. 어르신은 더이상의 대화는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곧 아이와 함께 양털을 깎고, 아이에게 양털모자를 씌워주는 퍼포먼스를 하며 쇼를 이어갔습니다. 저는 멀리서 그 모습 모두를 영상으로 담으며 아이에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아이가 주눅들까봐 걱정했던 건 모두 저의 기우였습니다. 아이는 여유있게 엄마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뭔지 모를 뭉클함이 불끈 올라왔습니다. 낯선 환경에서 느낀 아이의 대견함! 마냥 어린 애같기만 하던 첫째가 어느 새 저런 무대에서 외국인들과 섞여 있는데도 울지 않고 재미있어 하다니 나보다 낫구나,싶었습니다. 쇼가 끝나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아이를 쳐다보니 왠지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남편도 저도 눈물을 꾹 참고 쿨한 척하며 아이에게 하이파이브를 했습니다.
이 일은 하버브리지 사건보다 더 아이를 뿜뿜하게 만들었습니다. 역시 영어 쓰는 나라로 여행가길 잘했구나, 싶었습니다. 이런 예상 못한 추억들을 만들어 오다니. 곧 영어 공부를 시작할 아이에게 꽤나 긍정적인 신호였습니다. 두어 달 쯤 지난 후에야 호주에서 온 뿜뿜이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아이가 자신감을 얻을 만한 에피소드를 종종 만들어 줄 수 있을까요? 이제 코로나로 인해서 해외여행을 가기는 힘들어 졌으니, 아이디어를 더 짜내야겠습니다. 어학공부에서 자신감만한큼 중요한 기초체력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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